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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

[좋을글귀/명언]서정주 시인의 그리움을 비추다

by 세상의 즐거움 2016. 11. 5.

[좋은글귀/명언] 서정주 시인의 그리움을 비추다

 

시인 서정주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풋살구가 꼭 하나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지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 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반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도 잠이 오지 않았나보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시인 서정주.

그리움이 담긴 가슴 따뜻한 이야기

우리들의 마음에 당신의 이야기가

오랫동안 남길 바라겠습니다.